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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도자료, 성명, 논평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 요구안]

by 안산여노 2024. 10. 30.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 요구안]

 

가.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

① 민간중심의 돌봄체계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중심의 돌봄체계로 전환하라.

② 모든 시민에 대한 전 생애 권리기반 돌봄체계 구축하라.

③ 가구, 가족 중심이 아닌 개인 기반 돌봄·복지 체계 마련하라.

④ 남성생계부양자 모델 타파하고‘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로 재구성하라.

 

나.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 공공성 확보

⑤ 돌봄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어 충분한 돌봄노동 인력을 확보하라.

⑥ 국가와 지자체가 사회서비스 시설을 직접 운영하여 공공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라.

⑦ ILO 189호(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 비준하라.

 

다. 돌봄노동 가치 재평가 및 처우개선

⑧ 저평가된 무급·유급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여 사회적 인식 개선하라.

⑨ 돌봄노동자의 처우(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하라.

⑩ 근로기준법 11조 중 가사사용인적용제외 조항 폐기하여, 가사노동자에게도 노동관계법 전면 적용하라.

⑪ 이주 가사돌봄노동자들의 평등한 권리 보장하라.

 

라. 돌봄권리 보장

⑫ 모두의 돌봄권(좋은 돌봄을 받을 권리와 돌봄 할 권리) 보장하고, 돌봄기본법 제정하라.

⑬ 돌봄시간 확보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하고, 노동환경 개선하라.

⑭ 임신 유지와 중단, 출산, 양육의 전 과정에서 성평등한 권리 보장하라.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 요구안 해설서]

 

 

 

가.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

① 민간중심의 돌봄체계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중심의 돌봄체계로 전환하라.

② 모든 시민에 대한 전 생애 권리기반 돌봄체계 구축하라.

③ 가구, 가족 중심이 아닌 개인 기반 돌봄·복지 체계 마련하라.

④ 남성생계부양자 모델 타파하고‘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로 재구성하라.

 

돌봄 노동자는 저임금을 받으며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민주노총의 자료에 따르면, 돌봄 노동자 1,200여 명 가운데 91.7%가 계약직으로 일하며, 낮은 임금(74.4%)과 고용불안(61.2%), 그리고 일에 대한 낮은 사회적 평가(26.7%)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사회복지시설의 민간 운영비율은 거의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시설에서 돌봄노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것을 유추해 보면, 대부분의 돌봄노동이 민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에서 이뤄지는 돌봄 노동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양질의 돌봄을 지속가능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돌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국가가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돌봄을 상품이 아닌 권리로 보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현재 민영화된 돌봄 체계를 공공 중심의 돌봄 체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 체계에서 전 생애주기에 걸친 돌봄이 필수적입니다. 국가는 이 돌봄을 개인, 민간의 영역에 맡기며, 특히 여성들이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딸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집 밖에서 임금 노동을 하며 집 안에 돌아와 또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갑니다. 자녀를 기를 때, 배우자나 노부모를 부양할 때, 다른 사람의 돌봄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생애주기에 따른 공공 돌봄은 개인에게 안정적이고 양질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며, 돌봄 노동자는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가정 내 여성의 공짜 노동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하며 안정적으로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선순환이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가 저출생, 고령화가 되어가며 누군가를 돌보고 부양해야 하는 것이 가정 내에서만 이뤄질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가족 중심으로 구획된 사회복지는 국가의 역할을 보완적 기능으로 제한하는 것이며 가족구조가 변화하는 현실을 따르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결혼이나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 구성 바깥의 가구가 많이 증가하고 있으며, 국가가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서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공돌봄 체계를 통해 혈연, 지인 등의 사적 관계에 의존하지 않으며, 취약한 조건과 상황이 생기더라도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에게 전가되는 돌봄의 책임은 성별 이분법, 성역할 고정관념, 성별 분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여성을 돌봄전담자로 만드는 이분법적인 성별 분업 시스템 안에서, 여성은 남성의 배우자, 어머니가 되어 출산과 양육, 가사‧돌봄 노동을 통해 무급 재생산 노동을 수행할 것을 강요받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부장제와 함께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은 돌봄을 모든 시민의 책임으로 규정합니다. ILO의 2018년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부불노동의 76.2%를 여성이 수행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3배 넘게 부불노동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불 돌봄노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 (recognition)을 진작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적 방안들이 도입되어야 하며, 돌봄 관련 인프라의 확충 등을 통해 줄여야 (reduction) 하며, 또한 불가피한 부불 돌봄노동 또한 성별 간 고르게 분포되어야(redistribution) 합니다.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시민이 돌봄자가 되고, 또한 돌봄을 받을 권리를 지닐 때, 우리 사회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중심으로 한 사회가 아니라 재생산 노동이 모든 시민의 몫이 되는 사회로 전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돌봄이 특정 성별, 연령, 인종에게만 전가되는 부담이 아니라 누구나 돌봄을 주고받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 공공성 확보

⑤ 돌봄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어 충분한 돌봄노동 인력을 확보하라.

⑥ 국가와 지자체가 사회서비스 시설을 직접 운영하여 공공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라.

⑦ ILO 189호(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 비준하라.

 

한국 사회의 돌봄현장은 현재 노동인력 확보와 공공성 확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정부 인력추계에 따르면 2027년 기준 요양보호사 필요인력 수는 755,454명입니다. 하지만 현재 공급전망으로 볼 때는 2027년 75,699명(필요인력 대비 10%)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에서는 돌봄서비스직 노동공급 부족 규모를 2022년 19만 명→2032년 38~71만 명→2024년 61~155만 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가사‧돌봄 현장에는 요양보호사, 가사서비스 노동자, 간병인, 장애인활동지원사, 노인생활지원사, 아이돌보미, 산모‧신생아서비스 종사자 등 수많은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열악한 근로조건에 처해 있습니다. 열악한 임금, 이동시간은 임금에 포함되지 않고 서비스가 취소되면 임금이 그만큼 깎입니다. 대인 돌봄부터 청소, 세탁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한, 필수적인 노동을 하고 있지만 사회적 인식도 여전히 낮습니다.

올해 한국은행에서는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방안”이란 이슈노트를 통해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여 최저임금을 회피하는 방식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고, 동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방식 등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돌봄인력확보를 통한 돌봄의 공공성 확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부와 지자체, 정치인들은 지금 돌봄 현장이 처한 현실부터 직시해야 합니다. 현장이 2022년 장기요양실태조사에 따르면 기관 운영의 어려움으로 꼽은 1순위는 ‘인력 채용의 어려움’이며 장기요양인력 채용이 어려운 이유로 ▲열악한 처우 ▲업무 강도 등이 주요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미 열악한 처우와 업무 강도로 채용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저렴한 돌봄”은 돌봄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사·돌봄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어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는 등 돌봄 인력의 공공성 확보가 필요합니다.

인력 확보뿐만 아니라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공돌봄 역시 우리 사회 좋은 돌봄을 위해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2023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지자체가 설치/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 9,038곳 중 직영은 단 304곳(3.36%)뿐입니다. 민간 설치/운영 시설의 경우 53,473곳 중 개인(Individual)은 30,297곳(56.65%)으로 과반이 넘습니다. 지자체가 설치한 사회복지시설의 민간운영 위탁률은 2019년 89.6%(7,040개 중 6,307개)에서 2023년 97.1% (10,022개 중 9,731개)으로 상승했습니다. 민간중심의 사회복지 전달체계가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시기부터 서울 시민에게 돌봄을 제공하면서 공공돌봄의 상징적 역할을 수행해 온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 해산되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2년 <노인돌봄 공공성 강화 및 노인돌봄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통해 “민간기관은 국가 재정에 의존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이윤 추구를 위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민간 장기 요양기관 주도의 노인돌봄체계는 장기요양서비스의 질적 저하 및 돌봄 공백 등 여러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라고 우려를 밝히면서 “따라서 양질의 서비스를 담보할 수 있는 공공인프라를 확충하고 이를 통해 국가 주도의 공적 노인돌봄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서 외부조사업체를 통해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돌봄서비스와 같은 사회서비스 기관의 운영을 공공부문(공공기관 직영 또는 사회서비스원 등)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91.3%(민간부문은 8.7%에 불과)였습니다. 또한 돌봄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직영 및 공공위탁 운영 사회복지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92.7%가 공감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국가와 지자체는 중요한 돌봄의 필요성에 대해 지금보다 더욱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영 운영 및 사회서비스원과 같은 공공기관을 통한 공공 위탁으로 공공성과 투명성이 확보된 돌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ILO는 2011년 ‘국제노동계의 마지막 현안’이라고 불리던 가사노동자의 보호를 위하여 ‘189호 협약(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협약)’을 채택했습니다. ILO는 하나 또는 둘 이상의 가구를 위해 일하는 가사노동자(domestic workers)가 전 세계에 7,560만 명 이상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 76.2%가 여성, 약 81%가 비공식 고용, 17%가 이주노동자이며, 폭력과 괴롭힘 또 이동의 자유를 제한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했습니다. 다른 노동자 월 평균임금의 56% 수준의 급여를 받고 90%는 법적으로 사회 보장 제도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189호 협약은 모든 가사노동자에게 다른 노동자와 똑같은 노동보호와 사회보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이주 가사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협약은 찬성 396 대 반대 16, 기권 63표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채택되었고 한국 정부도 찬성표를 던졌지만, 현재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가구 내 고용노동자를 보호하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이 논의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협약을 비준해야 합니다.

 

 

 

다. 돌봄노동 가치 재평가 및 처우개선

⑧ 저평가된 무급·유급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여 사회적 인식 개선하라.

⑨ 돌봄노동자의 처우(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하라.

⑩ 근로기준법 11조 중 가사사용인적용제외 조항 폐기하여, 가사노동자에게도 노동관계법 전면 적용하라.

⑪ 이주 가사돌봄노동자들의 평등한 권리 보장하라.

 

현대 사회의 새로운 문제로 돌봄 위기가 대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돌봄의 중요성은 오히려 증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대표적 돌봄 정책인 보육정책, 노인정책, 장애인정책은 국가가 설계하면서 공급은 시장에 맡겨놓는 체계를 취하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장기요양기관 전체 28,868곳 중 국가나 지자체가 설립한 기관은 256개(0.9%)에 불과합니다, 법인은 3,984곳(13.8%), 개인 설립 기관은 24,628곳(85.3%)에 육박하였습니다. 올해 7월 기준, 국공립 장기요양기관이 설치된 시군구는 총 98곳, 설치되지 않은 시군구는 153곳으로, 전체 시군구의 64%에 국공립 장기요양기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돌봄서비스의 시장화 정책과 공공성 부족 경향은 서비스 질 저하와 노동자들의 낮은 처우·고용 불안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돌봄 노동자의 수는 2022년 기준 130만 4천 명으로 2015년에 비해 28% 이상 늘어나는 등 가파른 증가 폭을 보이고 있습니다. 돌봄 노동자의 92.5%는 여성으로 이중 절반이 50대 이상입니다. 임시직 비중은 전체 취업자(17.8%)보다 1.9배 많은 33.1%로 돌봄 노동자 3명 중 1명이 임시직입니다. 월평균 임금은 152.8만 원으로 전체 취업자 266.5만 원의 57.3%에 불과하고 돌봄 노동자의 22%는 중위 임금 2/3미만인 저임금 노동자입니다.

돌봄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처해 있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는 돌봄 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이며 성별화된 노동시장의 문제로 인해 돌봄노동이 저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봄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불이익의 원인을 좀더 살펴보면 학력, 경력, 노동시간, 노동조건 등의 차이로 설명할 수 없는 7~30% 가량의 임금 차이가 존재합니다. 돌봄이라는 노동에 대해 여성이 전담하는 허드렛일로 인식하는 사회 문화가 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가정에서 무급으로 하던 노동을 시장화하면서 여성의 노동에 대한 저평가가 저임금으로 고착화된 것입니다.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는 ‘돌봄 임금 프리미엄’을 통해 저평가된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고하고 있습니다. 돌봄노동의 가치 제고, 홀대받아 온 여성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개입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임금 불평등이 높고 돌봄의 공공성이 취약한 나라일수록 돌봄 노동에 대한 임금 불이익이 큰 경향이 나타납니다.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인 돌봄노동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정치적 결정과 정책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방문 돌봄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봄노동에 대한 기준이 적정 노동시간 보장, 적정 휴게 보장, 해고로부터의 보호 등을 받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은 방문 돌봄 노동자들이 이용자로부터 겪고 있는 폭언·폭행·성희롱의 위협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돌봄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보호를 위한 법이 필요합니다.

근로기준법 11조 가사사용인 적용 제외조항을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을 정부가 지도감독 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부터 가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법적 보호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가정방문 돌봄 노동자, 곧 가사노동자 가운데 노인요양, 바우처노동자 등 정부 영역의 노동자들과 가사근로자고용개선법에 따라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원칙적으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만 민간영역의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심지어 취업 알선, 직업훈련과 같은 기본적인 고용지원서비스도 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 조항의 폐기를 전제로 가사사용인, 곧 가구 내 고용노동자들을 가정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적절하게 보호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합니다.

22년 9월 오세훈 시장의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 건의’, 23년 5월 윤석열 대통령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언급’에 이어 올해 시작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우려했던 대로 많은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필수 인력입니다. 가사돌봄노동자를 도입한다고 하면 ‘필수 인력’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일회용 소모품이 아니라 ‘전문 인력으로서 우리 사회에 정주’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 전에 선주민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라. 돌봄권리 보장

⑫ 모두의 돌봄권(좋은 돌봄을 받을 권리와 돌봄 할 권리) 보장하고, 돌봄기본법 제정하라.

⑬ 돌봄시간 확보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하고, 노동환경 개선하라.

⑭ 임신 유지와 중단, 출산, 양육의 전 과정에서 성평등한 권리 보장하라.

 

2021년 기준 한국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한국은 OECD 평균보다 긴 수준(연간 199시간 많음)입니다. 독일보다는 연간 521시간 더 길게 노동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노동시간은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장·일의 양 조절·일자리에 관한 문제와 직결되므로, 단순한 시간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늘 ‘노동시간과 휴식 시간 배분’이라는 빈약한 관점 아래 논의되어 왔습니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할 권리와 일하지 않을 권리의 문제이며, 여성에게 무급으로 요구되어 온 돌봄노동의 시간을 모든 시민과 평등하게 분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생산성을 중심으로 구획된 자본주의 시스템을 돌봄을 중심으로 개편하여, 노동을 중심으로 한 삶이 아니라 돌봄을 중심으로 한 삶에 맞는 새로운 시간 배분 관점을 보편적 삶의 모델로 가져가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임금노동시간 외 무급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여성의 노동시간은 남성의 노동시간에 비해 깁니다. 그러나 무급 돌봄노동 가치는 늘 평가절하당해 왔습니다. 남성 노동자가 장시간 임금노동으로 돌봄노동을 할 시간이 없다는 인식은 여성들의 무급 돌봄노동을 착취하며 존재해 온 장시간 노동시간의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반면 여성은 무급돌봄노동의 전가로 인해 유급노동시간의 충분한 확보가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을 틈타 기업들은 여성을 아무런 권한도 미래도 기대할 수 없는 시간제로 여성들을 내몰고 있습니다.

돌봄 책임이 과중하게 부여된 여성노동자들은 시간빈곤을 경험합니다. 이는 현재 채용 과정에 있는 여성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모든 여성을 돌봄 전담자로 전제하는 가정은 여성이 초장시간 노동 수행이 어렵다는 판단을 불러오고, 이에 따라 채용 성차별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초장시간 노동은 불평등하게 분배된 돌봄노동 시간문제를 심화시키고, 여성들이 차별받는 구조적 조건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돌보고 돌봄 받을 권리 확보의 관점, 그리고 노동 생산성을 중심으로 한 관점이 아닌,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관점으로 사유해야 합니다.

이미 노동시간 단축 실험을 진행했던 아이슬란드의 경우 유익했던 효과로 ▲이성 파트너가 있는 남성들은 가사책임을 더 많이 맡았고, 가사 노동을 공평하게 분담 ▲ 가족이나 친구 등 노동시간이 단축 실험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실험 참가자들과의 접촉이 확대되면서 그들로부터 유익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좋은 돌봄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공공성이 확보된 공적 돌봄의 확충도 필요하지만, 일터에서부터 부모의 노동시장 참여와 가족 내 아동에 돌봄을 함께 수행할 수 있도록 노동권과 돌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 돌봄권 (좋은 돌봄 받을 권리와 돌봄 할 권리)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돌봄기본법 제정까지 필요합니다.

또한 좋은 돌봄을 위해서는 누구나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국가가 책임지고 아프면 쉴 수 있는 제도, 즉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상병수당 제도와 법정 유급병가 제도를 마련하고 지원을 한다면, 돌봄 제공자, 돌봄 이용자, 가족 돌봄 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좋은 돌봄, 양질의 돌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임신 유지와 중단, 출산, 양육의 전 과정에서도 성평등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신경아 한림대(사회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올해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저출생 대책’에 대해서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젠더 관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가 핵심인데, 그게 빠졌다”고 평가했습니다.

가사/돌봄문제에 있어서 여성의 몫으로 치부해 온 한국 사회의 인식부터 변화해야 하고, 성평등한 권리가 육아와 돌봄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에 보장되어야 합니다. 성평등한 우리 사회의 변화 없이는 돌봄을 포함한 저출생 문제에 있어서 진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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